펴낸책단편소설 지리산
    단편소설 지리산

    "혹시, 진성(眞性) 스님을 아십니까?"
    부모와의 천륜을 끊고, 친구의 우정을 버리고, 이성의 사랑까지 등돌린, 그리고 자신에게 보낸 무수한 시선을 외면하고 입산한 진성 또한 잊지 못할 얼굴이었다. 과묵하여 부처처럼 입이 무겁던, 속가의 인연을 버리려 무던히 애쓰던, 가끔 속가 생각에 쓸쓸한 얼굴을 감추지 못하던, 펄럭이는 승복에는 항상 신심이 넘치던, 묘향대 그 험한 눈길을 홀연히 오르던, 우리 착한 친구요 동생 갔던 진성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승려는 진성까지 알고 있는 방문객을 의아해 하며 단전에 모은 양손을 양 무릎위로 올려 기를 풀었다.
    "진성 스님도 화엄사를 떠나셨습니다. 인도로 유학을 떠나셨어요. 전적으로 진산 스님의 권유와 추천으로 유학을 갔는데, 아마 진산 스님이 화엄사를 떠날 채비를 하면서 먼저 진성 스님을 보냈을 겁니다. 본인이 없는 화엄사에서 혹시 흔들릴지도 모를 진성 스님에 대한 걱정이 있었나 봅니다. 진성 스님, 인도에서 길고 먼 만행을 하고 있을 겁니다. 이래저래 두 분 모두 화엄사를 떠나 다른 길을 걷고 있지요. 화엄사에 모두 계셔야할 스님들 이였는데 아쉽게 떠나셨어요." 말이 끊기고 긴 침묵이 흘렀다. 묵언은 이별을 의미했다.
    그리고 방바닥에서 올라오는 온기와 백열전등에서 나오는 불빛이 사치스러워 김덕수는 앉은자리가 부담스러웠다.
    김덕수는 몸을 일으켜 작별을 알렸다. 문을 열고 나오니 차가운 밤 공기가 차라리 시원하게 느껴졌다.
    서둘러 방을 나온 김덕수를 따라 승려도 뒤를 따라 나왔다. 희미한 어둠 속에서 김덕수는 합장으로 스님에게 고마움과 이별을 동시에 표시했다.
    "웬만하시면 하루 밤 쉬시고 내일 떠나시지요."
    그러나 승려는 김덕수가 기어이 떠나고 말 사람임을 알았는지 합장으로 그의 무사한 밤길을 빌었다. 어머니가 없는 화엄사를 떠났던 진산처럼, 김덕수에게 진산이 없는 화엄사는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김덕수는 뒷걸음치며 스님이 신고 있던 하얀 고무신을 보았다. 어쩌면 저 하얀 고무신은 진산이 자주 신던 그 고무신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덕수가 돌아서 가려는데 승려가 발걸음을 잡았다.
    "진산 스님이 화엄사에 계실 때 서울 친구 이야기를 종종했어요. 한의사 친구라고. 중학교 때 제일 친한 친구였데요. 혹시 그 분을 아십니까? 많이 기다리던데." “네, 그 친구도 제가 아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국내에 없을 겁니다.”
    김덕수는 재차 합장하고 후원을 서둘러 나왔다.
    거짓말!
    김덕수는 승려에게 거짓말을 남기면서 그것이 결코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 그렇게 외로운 친구를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환멸이 출렁이는 도회에서 부질없는 삶을 살았던 그 친구는 진짜로 이 나라에서 살 자격이 없는지도 몰라.
    절 마당을 지나 돌계단을 올라 대웅전 앞에 서니 지리산을 넘어온 달이 산사를 추연히 비추고 있다. 달을 본 석등은 반가웠던지 불빛을 키우고 자비를 베푼다. 밤의 고요가 처마 끝에 걸치고, 번뇌를 부수던 목탁소리 멈춘 지 오래되었다. 차가운 바람에 풍경소리 얼어붙었고, 각황전 뒤에 4사자 3층 석탑은 어둠에 묻혀 명주실처럼 고운 백사장을 따라 흐르는 섬진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석탑 옆에 다기를 들고 있는 연기조사는 따뜻한 차 공양을 멈추지 않는다. 어머니께 향한 효행은 곧 불심이었고, 어머니를 통해 불법을 깨달으려는 연기조사의 마음이 어둠을 타고 김덕수의 가슴에 애절하게 스며들었다. 차가운 돌덩어리에서 그렇게 따뜻한 감정을 느껴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진산이 연기조사이고 싶어했던 마음을 이제야 헤아릴 수 있었다. 화엄사 아래 어머니는 진산이 갈구했던 불법과 같이 가슴속에서 살아 숨쉬었는지 모른다.
    저 멀리 지리산 위에 떠있는 이름 모를 외로운 별처럼 김덕수의 눈은 촉촉이 젖었고 , 차가운 바람이 텅 빈 가슴을 스쳐 지나갔다.
    김덕수는 어둠 속의 지리산에 들어가 쉬고 싶었다. 그의 귀에는 이명처럼 선방의 목탁소리 들리고, 어느 암자에서 어머니의 슬픔을 달래고 있을 수척한 진산의 모습이 산을 넘어온 달과 포개어져 보였다.
    김덕수는 좀 더 걸음을 빨리 했다. 지리산 능선을 훨씬 더 달아난 달이 김덕수의 눈길을 추연히 비춰주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산 그림자에 묻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오욕칠정을 화엄사는 모두 해결해 주었고, 그곳에 모이면 그저 우정만이 존재했다. 그들에게 화엄사는 사찰이 아니라 그저 다정한 친구의 집에 불과했다. 화엄사는 그들에게 많은 유혹이 있었는데 특히 경내에 들어가는 입구에 매표소가 버티고 있지만 직원 아저씨들을 알고 있는 터라 꾸벅 인사하면 통과할 수 있는 특권이 그것이었다. 입장료 300원의 혜택은 그 돈 이상으로 흐믓했다. 사실 300원은 짜장면 세 그릇에 해당되는 거금이라 그 쫄깃쫄깃한 면발을 생각하면 진산이는 결코 버릴 수 없는 영원한 친구였다. 진산이가 커서 주지가 된다면 그들이 화엄사를 완전히 접수하게 되는 상상을 했다. 그를 친구로 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후회없는 선택이었다.
    처음 중학교에 입학하여 모두 검정 교복을 입었는데 유독 진산이만 회색 승복이라 적대심과 소외감으로 하루 종일 따돌림을 당했지만 차츰 친구들의 태도가 달라진 것도 입장료 300원의 위력 때문이었다. 성적이 위에서 세는 것 보다 아래에서 세는 것이 빠른 귓가에 혹이 난 푼수 꼬록이 시험날 진산에게 커닝을 허락하는 어처구니없는 과잉 친절이 있었고, 점심 식사 때 본 적도 없고 먹어보지도 않은 닭똥집을 진산의 도시락 위에 올려놓는 양계장 집 막동이도 진산과 사귀려는 피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덕수와 친구들은 진산이가 개밥에 도토리인지 닭 속에 학인지 모르지만 어울리다 보니 불교와 친해졌다. 일주문을 지난 돌계단을 오르면 양옆에 사천왕문의 주먹만한 눈을 가진 그 괴물은 잡신의 출입을 막는 수문장이라는 설명을 듣고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삼국지의 장비가 가진 그 칼을 사천왕도 한 자루 들고 있어 밉게 보이면 끝장날 판이었다. 그래서 덕수네 친구들이 화엄사에 들어갈 때는 사천왕에게 항상 진산이 친한 친구들이니 잘 봐달라며 합장의 예를 갖추며 히히덕거렸다. 풍진 세월을 보낸 빛 바랜 보제루는 스님들이 청년회나 학생회를 상대로 법회를 하는 곳으로 여름에는 노고단에서 내려온 바람이 통하는 곳이라 낮잠 자기에 적합했다. 겨울에는 난방이 안되어 빈 창고처럼 비어있어 덕수 친구들은 진산이를 꾀어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을 피해가며 쌈치기 하는데 제격이었다. 특히 진산이는 불전을 챙겨 승복 깊은 호주머니에 항상 동전이 한 웅큼씩 있었지만 보제루에서 잠깐 놀다보면 빈털털이가 되었다. 어쩌면 부처가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는 의식과 같았다. 그런 진산의 후덕한 인심을 나무랄 친구는 없었고 제 용돈을 탕진하지만 절대 쪼다로 여기지 않고 고마운 베스트 프렌드였다.
    화엄사가 그들의 놀이터였지만 예의 범절은 절 집안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친구 집에 놀러가면 그 친구 부모님께 인사를 하듯이 화엄사에 가면 주지스님께 정중히 삼배를 올렸다.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하는 삼배지만, 오체투지로 팔 다리와 머리를 방바닥에 대고 진산이 아버지 격인 주지 스님께 넙죽 큰절을 올리는 예를 빠트리지 않았다.
    그 인사만 끝나면 주지 스님은 명절 시골집을 찾은 손주 대하듯 입가에 흐믓한 미소가 흐르고, 벽장 속에서 신도들이 49제를 지내고 남기고 간 산자나 유과 등을 내놓았다. 보지도 먹어 보지도 못한 제주도 한라봉을 먹었고, 단단하면서 단맛이 농축된 공주 밤은 지리산 야산의 그것과는 게임도 안되었다.
    화엄사에 다녀온 다음날 월요일에는 주가가 껑충 뛰어오른 진산이 주위에 두엄자리에 쇠파리 꼬이듯 친구들이 모여들었다. 특히 점심에는 알랑방귀 꾸는 친구들로 둘러 쌓였다. 진산이 도시락 반찬은 기껏 들기름에 무친 취나물이나 콩나물이 고작이었다. 친구가 특별 메뉴인 계란 한 토막을 살점 떼어주는 아픔으로 진산에게 떼어주면 히죽 웃으며 밥 밑에 숨겨 한입에 먹었다. 진산의 웃음 속에는 주지 스님에게 말하지 말라는 묵계가 숨어 있는 것을 친구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 비밀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자던 약속이 포함되었다.
    특히 진산이 반야심경 뿐만이 아니라 천수경까지 줄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2시간이나 넘게 독송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친구들은 모두 그를 큰스님으로 달리 보았다. 천수경은 공부를 많이 한 스님들이나 할 수 있는 경전으로 화엄사에서도 몇 명이 안되었다. 국민교육헌장 이 백 몇 자도 쩔쩔매는 형편인 덕수네 아이들은 절로 탄성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거의 IQ 150에 육박한다며 천재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의 무한한 능력을 생각하기에는 아직 어린 악동들이었기에 그런 생각은 매우 자연스러웠다. 언젠가 4월 초파일에 전국에서 신도들이 모인 행사에서 진산은 기다란 장삼에 가사를 걸치고 주지 스님 뒤를 따라 다니며 목탁을 두드리며 무언가 경전을 말했다. 많은 신도들이 합장을 하고 그 뒤를 따르고 꼬리는 한없이 길었다. 그저 학교에서는 평범한 친구였는데 화엄사에서는 그 세도가 보통이 아니었다. 주지 스님이 제일 신임하는 승려로 생각하고 싶었다. 더구나 인시(寅時)가 진산이 기상 시간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친구들은 기가 질리고 말았다. 새벽 4시는 한 밤중인데 그 시간에 일어나 무엇을 한다는 말인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승려생활이었고 그 시간에 일어나 학교 공부를 한다면 반에서는 물론 전교에서도 성적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것이 틀림없었다. 후에 안일이지만 학교 공부는 중간치만 하면 된다는 주지 스님의 교육 방침에 따라 그 정도 유지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절에서 큰 공부하는데 너무 학교 공부 치중할 필요 없다는 지론이었다.
    이런 영원한 친구 진산이를 만나러 화엄사에 갈 수 없게 된 것은 순전히 털보 새끼 승덕이 때문이었다.

    유난히 절 집안 행사를 유난히 꿰뚫고 있는 털보가 음력 12월 2일 성도절 다음날 화엄사에 처들어가자는 것이었다. 성도절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도를 깨달은 날이니 장만을 많이 하여 주지 스님 벽장에 먹거리가 많을 거라는 고급 정보였다. 친구들은 굶주린 사자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털보의 굿 아이디어에 찬사를 보낸 것까지는 좋았다. 주지 스님께 넙죽 건성으로 삼배를 올리고 털보의 예상대로 머리통 만한 신고 배, 사각사각한 후지 사과, 그리고 노오란 바나나까지 정말 메뉴가 최고급 이였다. 그 당시 바나나는 처음 보는 과일로 털보에게 시의 적절한 택일에 감사의 눈짓을 보내며 먹었다. 그 부드러운 감촉에 단맛은 혀끝을 녹일 정도였다. 보스와 캡틴은 무언가 달라야 한다는 털보의 건방이 그날은 예외였다. 틀림없는 명언이 되었다. 물론 보스와 캡틴을 구분할 수 있는 털보가 아니었다. 어디선가 들은 뒷골목 용어에 불과했다. 특히 영어를 쓰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던 시절이 아닌가.
    그 날 따라 주지 스님은 과일 바구니 채 건네주며 진산이 방에서 먹으라는 배려가 있어 얌전떨지 않고 평소 탐욕스런 그 식성을 발휘할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몰랐다. 입안에 바나나가 가득하고 왼 손에는 손아귀에 다 들어오지 않는 신고 배가 들려져 있었다. 먹을 때는 서로 말을 건네지 않았고 탐욕의 눈빛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과일 바구니가 바닥을 드러내고 올챙이배처럼 볼록할 때 털보를 따라 얼굴에 4사자 3층 석탑으로 올라갈 때까지는 모두 행복했다. 자식 밥 얻어 먹인 흥부처럼 털보는 그 날 따라 유난히 수염이 굼실거려 성숙해 보였다. 석탑을 지나 관광객들을 피해 그들의 아지트인 언덕 위로 올라가 섬진강을 바라보며 쪼그리고 앉았다.
    평소 음담패설이 아니면 별로 할 말이 없던 털보가 그 날도 역시 잡히지도 않는 수염을 한 번 쓰윽 문지르더니 말문을 열었다.
    "야, 그 바나나 꼭 내 빳다 같더라."
    친구들의 포화는 사정이 없었다.
    "머시여. 니 좃이 그렇게 크다고. 다 꼴려도 그렇게는 안 되겠다.”
    "그럼. 그 정도는 사람 것이 아니여. 말 좃 정도는 되어야지. 아따 말 좃이 크기는 크도만."
    그 집중 포화를 피할 겸 맨 가운데 버티고 앉은 털보는 때 절은 점퍼 안 호주머니에서 여학생 사진 한 장을 꺼냈다. 단발머리를 귀 뒤로 얌전히 넘긴 얼굴이 총명스럽게 보였다.
    일순 지나던 바람도 고개를 숙여 사진을 바라보았다. 물론 친구들은 얌전히 앉아있던 자리에서 몸을 세워 사진에 고개를 처박았다. 친구들이 몸을 밀칠수록 털보는 사진을 이리 저리 흔들며 으시대였다.
    "이 학생이 바로 남원 여중 최고 아니냐. 반장에다 얼굴 삼삼허고. 가슴 빵빵허고."
    "털보야. 니 애인이냐?"
    그쯤 해서 털보는 맛만 보이고 사진을 호주머니에 깊이 넣어 버렸다.
    "에이 쫌 더 보자."
    털보는 그 날 일주문 앞에서 헤어지면서 그 사진을 펄럭이는 진산이 장삼 속에 넣어 주었다. 하얀 카라가 손때묻어 더렵혀졌지만 누구나 간직하고 싶은 그 사진을 진산에게 준 이유를 친구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포식한 감사의 표시였고 다음에도 달력을 꼼꼼히 챙겨 행사 뒤에 찾아오겠다는 예약의 의미도 있었다. 또한 예쁜 여학생이나 가슴이 풍만한 아가씨 사진은 제공할 테니 화엄사 방문을 환영해 달라는 무언의 압력도 포함되었다.
    진산이는 엉겁결에 이름도 모르는 여학생의 사진을 불경 속에 넣었고, 그 여학생은 졸지에 친구가 되었다. 며칠 후 총무 스님이 진산이 경전에서 진산이 또래의 여학생 사진을 보았고, 그 사진은 피할 수 없는 여자 친구가 되어 주지 스님에게 고해지고 말았다. 그렇게 믿었던 진산이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여학생이나 사귀다니. 그것도 멀쩡히 승복을 입고 사귀었을 것을 생각하면 사찰 퇴출 1호에 해당되는 사건이었다. 진산이는 장단지가 퍼렇게 멍이 들었고 새벽 예불 1시간 전에 일어나 대웅전과 각황전 청소를 맡아 공부 시간에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기 예사였고, 그 소식을 들은 친구들은 진산이 보기가 미안해 슬슬 피했고, 특히 털보는 자숙의 뜻으로 엉성한 수염을 형님의 면도기를 빌려 밀어버리고 보스와 캡틴의 자리를 사퇴하는 용단을 내리고 말았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절에서 여자는 마귀와 같다는 사실을 알았고, 절간의 변소 문이 위 아랫부분이 가려지지 않고 중간부분만 달랑 매달려 있는 이유도 깨달았다. 스님들이 변소에서 큰일을 볼 때 배변 이외의 다른 장난을 하지 말라고 변소 문이 가운데만 달려있다는 것이었다. 꼬치가지고 자꾸 장난치면 정진하는데 장애가 된다는 것이요, 여자는 독사의 아가리를 가지고 있으니 조심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진산이의 설명에 털보는 전직 보스와 캡틴으로서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왜, 딸딸이를 못 치게하지? 기분이 대낄인데."
    김덕수가 서둘러 내리는 몇 안 되는 승객들과 함께 구례구에 내렸을 때는 저 멀리 지리산 자락이 어둠에 묻혀 있었다.
    기차는 추억과 승객을 남긴 채 어둠을 뚫고 아직 남은 여정을 향해 달렸다. 어쩜 기차는 이별인지 모른다. 평행선을 달리는 철도의 레일처럼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만나기 어려운 인간사를 대변해 주고 있었다. 특히 밤 열차는 외로움에 실내등을 켜지만 그래도 어둠은 고독인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둠 속을 달리는 기차는 외로울 수밖에 없다. 이쯤 내려오면 재동이도 고개를 박고 잠이 들었을 것이고 남도의 거시기 사투리도 지쳐 꾸벅꾸벅 졸고 홍익회 아저씨 목소리도 쉴 시간이었다. 역 앞에 은어 회 매운탕 집 네온이 쓸쓸히 불을 밝히고 호객을 하지만 누가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밤이 되어서 기온이 내려간 탓도 있지만 서둘러 목적지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그곳에 가면 따뜻한 온돌과 인간의 체온이 있기에 몸을 움츠리며 서둘러 시내버스를 탔다.
    김덕수는 버스가 구례교를 지날 때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지만 강물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다리 밑으로 흐르는 섬진강을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중학교 때 은어 쏘가리 가재를 잡던 그 섬진강은 그에게 희망이었는데, 왼편 가슴엔 지리산이, 오른 편에 섬진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정다운 친구들은 흩어지고 겨우 진산이만 화엄사를 지키고 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 아닌가. 진산이가 몸과 마음이 아프다며 그래도 한의사인 덕수가 내려와 고쳐야 한다는 우정을 중학 시절 꼴통이던 털보 승덕이가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해댔다. 진맥 좀 보고 한약을 먹으면 나을 것 같다는 예진을 했고 침 몇 방이면 끝날 것 같다며 재촉했다. 털보는 중학 시절 보스와 캡틴을 모두 청산하고 늦게나마 속 차려 광주에서 큼지막하게 가든을 하며 오지랖 넓은 능력을 발휘하여 친구들 소식통이었다. 특히 진산이가 어머니를 여의고 더욱 상심이 컸는지 얼굴이 말이 아니라는 연락이었다. 김덕수로서는 진산이 어머니의 부고를 받고도 내려오지 못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있어 사죄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그리워하던 전라선 열차를 탔던 것이다. 버스가 구례 읍내를 지나 황전리로 향하면서 어둠에 묻힌 지리산은 어둠속에서 성큼성큼 가까이 다가왔다. 더 큰 암릉이 저쪽 편은 화엄사 줄기요, 그 옆엔 연곡사 계곡이요, 산자락에 보이지 않는 저 너머는 쌍계사 대성동 계곡일텐데. 참 오랜만에 찾는 지리산이었다. 그 동안 한의원 개원하고 그 30여 평의 좁은 공간을 벗어나지 못한 나약한 세월들이 몇 년이던가. 그리운 진산과 지리산이 있건만 왜 그리 서울이라는 울타리를 떠나지 못했던가. 생활인이 되는 과정은 그만한 희생을 요구하였고 구속은 누구의 지시도 없이 이루어졌다. 30평 인생이던 도시 생활을 진산은 이해해주겠지. 사회의 초년생이 뿌리를 내리기 위해 발버둥치는 몸부림을 친구는 시샘하지 않겠지. 지리산은 김덕수의 가슴에서 자꾸 커져갔다.
    황전리에 들어서자 주위가 환하게 번화한 마을이 되었다. 일주문 아래에 있던 호남상회 구례상회와 취나물과 콩나물 국밥을 잘하던 전주식당 남원식당이 황전리 아래로 내려왔다. 노고단 노래방, 지리산 단란주점, 반야 카페, 광주 생등심, 그리고 아마존 모텔이 지리산 입구를 지켰다. 가을이면 주렁주렁 매달리던 감나무와 은행나무는 흔적도 없고 소 외양간 어미 소 울음소리가 들리던 곳에서 노래방 스피커가 앵앵거렸다. 왼편에는 큼지막한 건물이 보였는데 호텔이나 콘도처럼 보였다. 주차장에서 바라보이는 어둠 속의 화엄사 계곡은 거인이 되어있다.
    일주문을 지나 돌계단을 올라서니 사천왕문은 옛 그대로 유난히 큰 몸짓에 주먹만한 눈으로 겁을 줬지만 왠지 오랜만에 만난 다정한 친구처럼 느껴졌다. 어쩜 중학 시절에는 친구였는지 모른다. 좀 인상이 험악해 모두들 왕따를 놓았겠지만 털보랑 덕수네 친구들은 마음 착한 친구로 여기고 그 문을 지났을 것이다. 사천왕은 폼만 잔뜩 잡고 있지만 풍성한 과일과 산자 누룽지를 주시던 인심이 후한 주지스님의 부하일게 분명하기 때문에 그저 친구로 여겨도 좋을성싶었다.

    대웅전 촛불도 꺼놓은 화엄사는 어둠에 묻혀 고요히 잠들어 장좌불와(長坐不臥)하는 수도승 같았다. 각황전 앞에 석등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은 화엄사가 살아있다는 증거로 유일한 생명체였다. 노승의 번뇌를 불사르듯 살아있는 석등은 조용히 불을 밝혔다. 김덕수는 종각 뒤에 있는 약수를 기억했다. 방학 때 내려와 지리산에서 삽주뿌리, 수자헤좃, 산당귀, 도라지를 캐다가 갈증을 느끼면 마시던 그 약수를 잊을 수 없다. 진산과 깊은 밤에 계곡에 발 담그고 마신 곡차가 과하면 어둠을 틈타 날짐승처럼 내려와 조롱박에 생수를 마시던 추억을 지나칠 수 없다.
    지리산에서 정화되어 내려온 약수는 온몸이 시리도록 차가웠다.
    늦은 밤 추위에 떠는 산사(山寺). 진산 뿐만이 아니라 객승도 보이지 않는 산사는 어둠과 고요만이 부처와 함께 지리산을 지켰다.
    김덕수는 털보랑 진산이랑 놀던 4사자 3층 석탑에 오르려다 그만두었다. 어둠 때문이었고 추위 때문에 몸을 웅크리었다. 오르는 길에 동백이 겨울에 눈 속을 헤집고 탐스럽게 피었는데,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김덕수는 진산이 주간지나 뒤적이며 저녁을 소일할 것 같지가 않아 종무소로 향하던 발걸음을 후원쪽으로 돌렸다. 어쩌면 원효의 대승기신론을 읽으며 한국 불교의 선맥을 잇고자 무진 애를 쓰고 있는지 모른다. 하안거와 동안거에 스님들의 독경 소리 들리던 강원 뒤에 위치한 후원에는 불빛이 산사의 어둠과 대치하고 있었다.
    진산이는 중학교 때에도 후원에서 귀퉁이가 너저분한 고상한 책을 자주 보았는데 지금도 분명 그러하리라. 어머니를 보낸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 천수경을 읽고 있는지도 모른다. 금강경을 읽으며 어머니의 가시는 길을 빌고 있는지 모른다. 김덕수는 걸음을 빨리 했다.
    진산이 어린 행자 때부터 기거했던 후원을 보니 중학시절 회색승복을 입은 신출내기 그가 떠올랐다. 석가처럼 빡빡 머리에 표정없던 진산의 의젓함이 외로움으로 깊은 추억 속에서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빨리 그와 합장을 하고 따뜻한 눈을 마주치고 싶었다. 그리고는 저 속세의 일로 지친 마음을 그의 흙 냄새나는 우정으로 씻어내고 싶었다. 그러고 보면 그는 지금쯤 병든 의사를 치료하는 진짜 의사가 되어있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그에 대한 정겨운 질투가 타올라 쓴웃음이 나왔다.
    “스님 계세요?”
    한참만에 삐그덕거리는 문이 열리더니 강한 불빛이 쏟아져 나왔다.
    김덕수는 조용한 시간을 간섭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어 우두커니 서서 합장으로 대신했다. 입가에 김이 서렸다.
    “진산 스님을 찾으러 왔습니다.”
    참선을 했는지 앳된 승려는 아직 단전에 모인 기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목소리에 아무런 감정을 담지 않은 승려는 늦게나마 합장으로 인사했다.
    “진산 스님?”
    “예, 잘 아는 사이입니다.”
    “스님은 지금 화엄사에 안 계십니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지고 야속한 생각이 들었지만 김덕수는 합장한 시린 손을 풀지 않았다. 바지를 스치는 사나운 바람도 숨을 죽이는지 추위를 느낄 수 없었다. 그저 등신불이 되어 버리고 싶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럼 어디에?”
    “오랜만에 오셨나보죠?”
    “이 년이 지났습니다. .”
    “날씨가 쌀쌀한데 잠깐 들어오시지요.”
    벽에는 짙은 밤색 가사가 걸려있고 구식 옷장 위에는 이불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특히 나무뿌리로 만든 손 때 절은 책상이 윗목에 놓여있고, 그 위에 그 승려가 읽고 있던 경전이 불빛을 받아 살아있는 언어가 되어 부처의 말씀이 구구절절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김덕수는 찬 손으로 찬 손을 만지니 뼈 속까지 냉기를 느껴 자신도 모르게 손을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진산의 부재가 안겨준 허망함은 녹이지 못할망정 차가운 손은 충분히 녹일 수 있었다. 온돌의 고마움을 느낄 여유가 없지만 추위에 웅크린 어깨는 긴장을 풀었다.
    초면의 승려는 정이 많은 성격이었다.

    "먼데서 오셨나 봅니다."
    "예, 서울에서 내려오는 길입니다. 진산 스님과는 절친한 사이고요."
    "그 동안 서로 소식이 끊긴 모양이군요."
    "예, 서로 바쁘다보니."
    "그러셨군요. 그럼 그 동안 진산 스님 몸이 안 좋아 고생한 사실을 모르시겠군요."
    ". . . . . . "
    "속가에 계시던 어머님이 작고하시자 스님은 흔들렸어요."
    김덕수는 2년여 동안 소식을 전하지 않고 살던 부끄러움 때문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진산이 김덕수를 제일 친한 친구로 알고 있었을 텐데 그 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했으니 우정을 나눈 친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반문해도 혼돈의 뇌 세포는 정리되지 않았다. 친척이 없는 진산이 어머니를 여의고 제일 그리운 사람이 친구였을 텐데, 친구 중에 마음을 의지할 상대는 김덕수였을 텐데. 용서를 빌어야 하는데 어디 가서 찾을 수 있을까? 풀리지 않는 문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일 년 전이었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편두통과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신경성 위장병으로 전혀 먹을 수 없어 몸이 수척해 고생하던 중 주위 권유로 내과에 가서 여러 검사를 했지만 모두 정상이었어요. 할 수 없이 신경정신과에 갔지요." 김덕수는 기차에서 먹은 도시락이 거북했다..
    "정신과에서 상담한 결과 우울증과 신경쇠약으로 진단이 나와 쭈욱 양약으로 치료했어요. 불면증은 좋아졌는데 체중이 줄고 체력이 떨어져 한방병원에서 한약 처방을 받았어요. 아무래도 몸을 보해야할 것 같아서요. 기력을 보하는 데는 한약이 최고 아닙니까. 저희 스님들은 양약 보다 한약을 좋아하거든요."
    김덕수는 범법행위를 자백한 죄인처럼 눈을 크게 뜰 수 없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자신도 모르게 저 깊은 오장육부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느꼈는데, 한숨이었다. 한숨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는 허전함이 자리 잡았다. "진산 스님은 제가 행자 생활할 때 제일 자상한 스님이었어요."
    법명을 밝히지 않은 승려는 김덕수의 감정을 모른 채 진산을 자상한 승려로 기억했다. 진산에게 받은 인간의 정을 이제는 베풀기라도 하려는지 그 간의 상황을 소상히 밝혔다. "한방병원에 갈 때 저도 한 번 동행 한 적이 있어요. 진산 스님이 신경쇠약으로 고생하시는 것은 어려서 출가한 인생의 업보 때문이래요. 부모의 정, 형제의 정, 친구의 정, 사회의 정을 느끼지 못하고 출가하여 평소 애정 결핍 상태였답니다. 영양결핍처럼. 어려서 출가한 스님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인데 진산 스님도 그걸 극복하지 못한거죠. 속가의 인연을 끊었지만 사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큰 의지가 되었나 봅니다."
    승려는 자세 하나 흩트리지 않고 정신과 의사처럼 나름대로 진단을 내렸다.
    "퇴비가 부족한 대지에 싹이 띄지 않듯이 사랑이 부족한 수도 생활이 쉽지 않았나 봅니다."
    승려는 단전에 기를 모으는지 잠든 아이처럼 근심 걱정없는 얼굴을 하고 눈을 감았다 떴다를 몇 차례 반복했다.
    김덕수는 마른입을 다셨다.
    "그럼 진산 스님은?"
    김덕수는 승려가 하는 모든 말은 자신에게 고문처럼 들렸다. 너무 오래 그를 버리고 살아온 것에 대한 죄책감과 함께 진산의 수척한 얼굴이 달려들어 김덕수의 가슴이 메여왔다.
    "지금 어디에 계신지 모릅니다. 어느 떠돌이 스님 말에 의하면 경상도 어느 토굴에서 봤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외부 출입을 금하고 참선하는데 매우 수(瘦)하더랍니다. 참 좋은 스님이었는데 어머님을 잊지 못했나 봐요. 아시다시피 진산 스님 고향이 화엄사 아랫마을 황전리라 화엄사를 떠나셨을 거예요."
    단전에 축기된 기운을 좀 거칠게 내뿜는 것이 한숨처럼 들렸다.
    "다른 스님 같으면 못 견디고 환속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스님은 건강이 문제지만 잘 버티고 계실 겁니다. 부처님과의 인연을 쉽게 끊을 순 없지요."
    승려는 진산의 방황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는지 눈 사이 미간이 일그러졌다. 잊고 있던 얼굴이 떠올라 번뇌를 겪는지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저 승려는 무엇을 구하려 그 험난한 구도자의 길을 택했을까? 그 길의 끝은 어디이며, 언제까지 가야하는가? 김덕수는 밑도 끝도 없는 물음에 심한 현기증이 났다.
    혼탁한 정신이 정리될 때 승려는 미간을 풀고 가볍게 눈을 떴다. 눈은 마치 설화에 맺힌 물방울에 깨끗하고 맑은 햇살이 비춰지는 것 같았다. 수행을 통해 깨끗해진 눈을 보자 잊고 있었던 또 하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혹시, 진성(眞性) 스님을 아십니까?"
    부모와의 천륜을 끊고, 친구의 우정을 버리고, 이성의 사랑까지 등돌린, 그리고 자신에게 보낸 무수한 시선을 외면하고 입산한 진성 또한 잊지 못할 얼굴이었다. 과묵하여 부처처럼 입이 무겁던, 속가의 인연을 버리려 무던히 애쓰던, 가끔 속가 생각에 쓸쓸한 얼굴을 감추지 못하던, 펄럭이는 승복에는 항상 신심이 넘치던, 묘향대 그 험한 눈길을 홀연히 오르던, 우리 착한 친구요 동생 갔던 진성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승려는 진성까지 알고 있는 방문객을 의아해 하며 단전에 모은 양손을 양 무릎위로 올려 기를 풀었다.
    "진성 스님도 화엄사를 떠나셨습니다. 인도로 유학을 떠나셨어요. 전적으로 진산 스님의 권유와 추천으로 유학을 갔는데, 아마 진산 스님이 화엄사를 떠날 채비를 하면서 먼저 진성 스님을 보냈을 겁니다. 본인이 없는 화엄사에서 혹시 흔들릴지도 모를 진성 스님에 대한 걱정이 있었나 봅니다. 진성 스님, 인도에서 길고 먼 만행을 하고 있을 겁니다. 이래저래 두 분 모두 화엄사를 떠나 다른 길을 걷고 있지요. 화엄사에 모두 계셔야할 스님들 이였는데 아쉽게 떠나셨어요."
    말이 끊기고 긴 침묵이 흘렀다. 묵언은 이별을 의미했다.
    그리고 방바닥에서 올라오는 온기와 백열전등에서 나오는 불빛이 사치스러워 김덕수는 앉은자리가 부담스러웠다.
    김덕수는 몸을 일으켜 작별을 알렸다. 문을 열고 나오니 차가운 밤 공기가 차라리 시원하게 느껴졌다.
    서둘러 방을 나온 김덕수를 따라 승려도 뒤를 따라 나왔다. 희미한 어둠 속에서 김덕수는 합장으로 스님에게 고마움과 이별을 동시에 표시했다.
    "웬만하시면 하루 밤 쉬시고 내일 떠나시지요."
    그러나 승려는 김덕수가 기어이 떠나고 말 사람임을 알았는지 합장으로 그의 무사한 밤길을 빌었다. 어머니가 없는 화엄사를 떠났던 진산처럼, 김덕수에게 진산이 없는 화엄사는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김덕수는 뒷걸음치며 스님이 신고 있던 하얀 고무신을 보았다. 어쩌면 저 하얀 고무신은 진산이 자주 신던 그 고무신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덕수가 돌아서 가려는데 승려가 발걸음을 잡았다.
    "진산 스님이 화엄사에 계실 때 서울 친구 이야기를 종종했어요. 한의사 친구라고. 중학교 때 제일 친한 친구였데요. 혹시 그 분을 아십니까? 많이 기다리던데."
    “네, 그 친구도 제가 아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국내에 없을 겁니다.”
    김덕수는 재차 합장하고 후원을 서둘러 나왔다.
    거짓말!
    김덕수는 승려에게 거짓말을 남기면서 그것이 결코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 그렇게 외로운 친구를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환멸이 출렁이는 도회에서 부질없는 삶을 살았던 그 친구는 진짜로 이 나라에서 살 자격이 없는지도 몰라. 절 마당을 지나 돌계단을 올라 대웅전 앞에 서니 지리산을 넘어온 달이 산사를 추연히 비추고 있다. 달을 본 석등은 반가웠던지 불빛을 키우고 자비를 베푼다. 밤의 고요가 처마 끝에 걸치고, 번뇌를 부수던 목탁소리 멈춘 지 오래되었다. 차가운 바람에 풍경소리 얼어붙었고, 각황전 뒤에 4사자 3층 석탑은 어둠에 묻혀 명주실처럼 고운 백사장을 따라 흐르는 섬진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석탑 옆에 다기를 들고 있는 연기조사는 따뜻한 차 공양을 멈추지 않는다. 어머니께 향한 효행은 곧 불심이었고, 어머니를 통해 불법을 깨달으려는 연기조사의 마음이 어둠을 타고 김덕수의 가슴에 애절하게 스며들었다. 차가운 돌덩어리에서 그렇게 따뜻한 감정을 느껴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진산이 연기조사이고 싶어했던 마음을 이제야 헤아릴 수 있었다. 화엄사 아래 어머니는 진산이 갈구했던 불법과 같이 가슴속에서 살아 숨쉬었는지 모른다.
    저 멀리 지리산 위에 떠있는 이름 모를 외로운 별처럼 김덕수의 눈은 촉촉이 젖었고 , 차가운 바람이 텅 빈 가슴을 스쳐 지나갔다.
    김덕수는 어둠 속의 지리산에 들어가 쉬고 싶었다. 그의 귀에는 이명처럼 선방의 목탁소리 들리고, 어느 암자에서 어머니의 슬픔을 달래고 있을 수척한 진산의 모습이 산을 넘어온 달과 포개어져 보였다.
    김덕수는 좀 더 걸음을 빨리 했다. 지리산 능선을 훨씬 더 달아난 달이 김덕수의 눈길을 추연히 비춰주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산 그림자에 묻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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